텍스트 큐브가 blogger.com과 통합되면서 사실상 문을 닫을 예정인 모양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블로그를 이전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상당히 편리한 블로그였는데, 어쩔 수 없지요. 아직 텍스트 큐브 폐쇄 일정이 나와있진 않지만, blogger.com으로 옮기고 싶지는 않고, 또 데이타 유실의 위험도 있어보여서 그냥 tistory 쪽으로 자진해서 옮겨갑니다.

 

새 주소는

 

http://marxpino.tistory.com

 

뭐, 당분간은 예전에 쓴 글이나 업데잇 하는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젊었을 때 녹음 한 것 보다 괜찮네요^^

우연히 각종 외국어의 발음을 들어볼 수 있는 웹사이트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이미 아시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Forvo라는 웹사이트인데, 단순히 사전에 나와있는 단어들 뿐만 아니라 웬만한 지명이나 인물의 고유명사 발음도 들어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논란이 되는 Marx 나 Althusser 의 이름도 원어에서 어떻게 소리나는지 들어볼 수 있습니다 (알튀세르는 Louis Althusser로 나와있는 항목을 들어보면 더 정확히 알 수 있죠). 번역 작업 하다 보면, 발음을 알기 힘든 단어를 만나 종종 곤란을 겪는데, 그럴 때 적잖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http://www.forvo.com

 

태그 : Forvo,발음
참 공감 가는 글입니다. 한나라당 전당대회 이후에 박근혜의 입지가 상당히 축소되었는데, 박근혜로서는 고민해볼 수 있는 대안이고, 또 별다른 후보감이 없는 민주당도 고민해볼 수 있는 대안이라는 생각입니다.^^ 이번 진보신당 내에서 열린 당발전 토론회 기사를 보니, 일부 진보신당의 논자들은 칸트적 자유주의자라고 볼 수 있는 김상봉 선생보다도 더 오른 쪽에 가서 헤매고 계시더군요.  

박근혜와 민주당, 만나야 한다

전남대 철학과 교수. 학벌없는사회 사무처장,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 이사 등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 <학벌사회-사회적 주체성에 대한 철학적 탐구>(한길사·2004), <도덕교육의 파시즘>(길·2005), <서로주체성의 이념>(길·2007), <다시 대한민국을 묻는다>(한울·2007),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휴머니스트·2010) 등이 있다
BY : 김상봉 | 2010.07.13 | 덧글수(12) | 트랙백수 (2)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었으나 부결되었다. 세종시 법안 원안은 참여정부 시절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에는 원안에 찬성하고 사업을 지속할 것이라고 여러 차례 약속했으나, 취임 후 표변해 이러저런 이유를 들어 세종시 원안을 공공연히 거부하기 시작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맞아 노 전 대통령의 유품과 예술가들의 추모 작품을 모은 추모 전시회.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노무현의 선견지명, 보수를 재구성하라

 

통과 당시 한나라당이 찬성한 세종시 법안을 한나라당 출신 대통령이 거부한 속사정은 알 길 없지만, 한 가지 객관적 사실은 세종시 법 원안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을 때 한나라당의 대표가 박근혜 의원이었다는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이 법안을 반대하고 수정안을 제출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박근혜 전 대표의 결정에 대한 비판과 반대의 뜻도 있으니, 한나라당 내 박근혜계 반발은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명박 대통령은 상임위원회에서 부결된 수정안을 기어이 국회 본회의 표결로 가져갔고,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의원과 한나라당 내 박근혜계 의원의 합세로 수정안은 105 대 164로 부결되었다. 민감한 정치적 문제에는 공개적으로 입장을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한 박근혜 전 대표가 세종시 문제만은 예외적으로 단호한 태도를 밝혔다. 이번에도 표결에 앞서 굳이 발언을 자청해 수정안에 대한 자신의 반대 입장을 한 번 더 분명히 했다. 지난번 지방선거를 통해 국민의 의사가 충분히 표현되었고, 박근혜계 반대로 통과되지 않을 것이 뻔한 표 대결을 이명박 대통령이 어쩌자고 끝까지 밀고 갔는지 그 의도를 헤아릴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로써 한나라당 내에서 누가 이 대통령 편이고 누가 박근혜 의원 편인지 확연히 드러났고, 이것이 어떤 식으로든 2012년 총선 공천에 영향을 미치게 되리라는 사실이다. 어쩌면 이명박 대통령은 바로 이것을 위해 기어이 누가 누구의 편인지 확인하려 한 것은 아니었을까? 한나라당 내에서 여전히 자신을 따르는 사람이 박근혜를 따르는 사람보다 배가 된다는 사실에만 만족해하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랬다면 그는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아직 모르는 것이니, 그에겐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1971년의 일이다. 당시 공화당은 크게 세 계파가 서로 경쟁하고 있었다. 하나는 5·16 쿠데타에 참여한 군인 출신으로서 박정희 직계, 다른 하나는 같은 군인 출신이라도 김종필계, 그리고 민간인 출신의 정치인들이었다. 당시 총리는 김종필이었는데 야당인 신민당이 오치성 내무부 장관을 비롯해 몇몇 장관의 해임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한 적이 있다. 공화당은 국회 다수당이었으므로 해임동의안은 단지 정치적 공세일 뿐 실제로 통과되리라 여기지는 않았다. 그런데 예상대로 다른 두 장관에 대한 해임동의안은 부결되었으나, 오치성 내무장관 해임동의안은 통과되었다. 그와 경쟁관계에 있던 김성곤 재정위원장을 비롯한 민간인 출신 공화당 국회의원들이 집단적으로 해임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표결 결과를 보고받고 박정희 대통령은 불같이 노해 찬성표를 던진 20여 명을 중앙정보부에 연행해 죽지 않을 만큼 구타하고 고문한 뒤 당에서 제명하고 주동자들을 강제로 정치에서 은퇴시켰다. 쌍용 창업주 김성곤 재정위원장은 중앙정보부에 연행되어 구타와 고문을 당하는 과정에서 멋있게 기른 카이저 콧수염이 뽑혀 나갈 정도로 건강하던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나왔다. 그 후 그는 시름시름 앓다가 몇 해 더 살지 못하고 1975년 62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여당인 한나라당 내에서 박근혜 의원은 물론 친박계 국회의원이 아무리 대통령 뜻에 반대해 표결하더라도 박정희 시대처럼 국가정보원에 불려가 고문당할 것을 염려하지 않으니, 역사는 그렇게 조금씩 진보하는 것이다.

▲ <데칼코마니>, 1966-르네 마그리트

적과 아군이 선명해졌다

정치적 환경이 크게 개선되었지만, 한국 정치에서 좀처럼 진보하지 않은 분야가 한국의 정당정치다. 독일의 법학자 카를 슈미트가 말했듯이, 정치가 적과 동지의 구별에 기초한다면 모든 정당은 현실의 어떤 대립을 반영한다. 정당의 대립 구도가 현실 대립을 충실하게 반영할 때, 그렇게 대립하는 정당 역시 현실적 존재 이유를 얻게 된다. 그런데 현실의 대립은 시대에 따라 변하게 마련이고, 정당의 대립 구도 역시 그에 따라 바뀌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정당이 현실의 대립과 무관하게 서로 대립하게 되고, 이때 대립하는 정당은 현실의 대립을 조정하고 해결하지 못하면서 현실과 무관한 대립과 갈등을 재생산하게 된다. 지금 한국의 거대 정당 처지가 바로 그러하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대립은 거슬러 올라가면 남한 사회의 반독재 투쟁 과정에서 형성된 대립이다. 이 대립 구도가 수십 년 동안 지속되어온 까닭에 대다수 한국인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대립을 자명하고, 불변하며, 현실의 대립을 반영하는 객관적 대립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정치인이나 언론인, 그리고 시민단체 활동가나 학자도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아서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대립 구도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대립 구도가 2012년 총선과 2013년 대선까지 그대로 이어지리라 가정하고 선거의 승리를 위해 각자 당을 쇄신하고 연합 정치를 궁리한다.

6·2 지방선거를 전후해 범야권에서 논의되었고, 지금도 논의 중인 이른바 ‘진보의 재구성’이나 ‘진보 대연합론’ 같은 것도 동일한 고정관념에 따라 한나라당을 공동의 적으로 상정한 뒤, 어떻게 하면 이번 선거의 승리를 더욱 중요한 다음 총선과 대선으로 이어갈 수 있을지 궁리하는 정치공학적 계산이다. 하지만 선량한 사람들에게서 비난 살 것을 각오하고 감히 묻노니, 도대체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아직도 그렇게 물과 기름처럼 대립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오랫동안 한국 사회의 본질적 모순은 군부독재였다. 거슬러 올라가면 이 땅의 우익 정당은 의회 민주주의라는 최소한의 형식을 갖추기 위해 독재자들이 만든 정당이다. 한나라당 역시 뿌리에서 보자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에 반해 민주당은 그렇게 만들어진 독재자의 정당에 대항하는 정당으로 존속해왔다. 두 당의 대립은 독재자의 존재를 통해서만 현실 적합성을 얻는다. 하지만 누가 지금 독재자인가?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많은 사람이 그를 과거의 독재자들과 거의 다름없는 사람으로 취급해왔다. 그렇게 볼 만한 면이 많은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쩌면 이명박 대통령 자신도 어느 정도는 자신이 박정희나 전두환과 다르지 않은 최고권력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그는 이미 집권 중반기에 레임덕에 빠져든 5년 단임 대통령에 지나지 않는다. 세종시 수정안의 표결에서 보듯 여당 의원의 3분의 1이 대놓고 대통령의 뜻을 거슬러 표를 던져도 더 이상 그들을 국가정보원에 연행해 고문할 수 없다.

물론 아무리 과거의 독재정권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이 보여주는 반민주적 행태를 들자면 얼마든지 할 말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한나라당이 보여주는 극우적 행태가 민주당과의 대립 구도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증폭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는 민주당이 지금에 와서는 있지도 않은 한나라당과의 차별성을 드러내기 위해 진보 정당 행세를 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민주당이 진보 정당 흉내를 내는 것이나, 한나라당이 극우 정당으로 기우는 것 모두 현실로부터 괴리된 ‘사이비 대립’을 현실적 대립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기 위한 가면이다. 근본에서 보자면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모두 삼성을 비롯한 재벌의 정치자금을 받아 재벌을 위한 정치를 하면서 노동자에게 적대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북관계를 파탄으로 몰아넣었지만,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 초반에 대북송금 특검으로 평지풍파를 일으켜 대북관계를 냉각시킨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반대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난 것처럼 박근혜 의원 역시 김 전 대통령의 권유에 따라 2002년 한국미래연합 창당준비위원장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가 시작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지금 이명박 정부가 이어받고 있다.

한나라당-민주당의 과장된 대결

그렇다면 무엇이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여전히 적대적 대립 속에 묶어두고 있는가? 그것은 영남과 호남의 지역 대립이다. 두 보수 정당이 모두 이 지역 대립에 기생해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이념적으로 거의 차이가 없는 두 보수 정당이 사이비 대립을 연출하는 것이다.

여러 해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시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했을 때 너나 할 것 없이 비웃었으나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그것이야말로 한국 정치가 나아갈 바른 길이었다. 이념적으로 차이 없는 정당들이 지역 기반이 다르다고 적대적으로 대립하는 한, 한국 정치에 정상적인 이념적 대립 구도가 형성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보수와 진보를 가릴 것 없이 한국 정치의 근본적 발전을 위해 절박하게 요구되는 것은 진보의 재구성이 아니라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아우르는 보수 정당의 대통합이다. ‘왜 민주당과 국민참여당과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통합하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들은 이제 물음을 바꾸어 ‘왜 한나라당과 민주당과 자유선진당과 국민참여당이 합당하지 않느냐’고 따지는 것이 옳다.

이런 제안이 황당하고 비현실적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나는 두 가지 사실에 주목하길 권한다. 첫째는 지난 6·2 지방선거의 결과다. 많은 이들이 지난 선거를 반MB와 민주당의 승리로 평가한다. 하지만 그것은 표면일 뿐이다. 근본에서 보면 그 선거는 노무현의 승리였다. 그것은 강원도의 이광재 후보에서 경남의 김두관 후보까지 ‘노무현 사람’들이 선거에 승리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노무현이 추구한 가장 중요한 가치가 이번 선거를 통해 전반적 승인을 얻었다는 사실이다. 그 가치란 고질적인 지역 구도의 타파다. 경남에서 김두관 후보가 당선되고, 부산에서 김정길 후보가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45%를 득표한 것은 적어도 부산·경남의 민심이 더 이상 이전처럼 맹목적 지역 구도의 포로가 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을 의미한다.

지역정당 틀 깨고 보수 대통합을

다른 하나는 이번 세종시 수정안 표결에서 보듯 한나라당의 박근혜계가 민주당과 연합해 이명박 대통령과 대립하는 것은 이제 시작일 뿐 앞으로 계속 증폭될 수밖에 없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이를 통해 민주당과 한나라당 박근혜계 사이에 실질적인 연합이 진행될 것이다. 특히 현재 진행되는 4대강 사업은 한나라당 내의 박근혜계와 이명박계를 다시 분열시키는 시한폭탄이 될 가능성이 높은 사안이다. 4대강 사업은 이명박 대통령이 자신만의 고유 치적으로 여기는 중요한 역점 사업이지만 세종시 수정안 이상으로 국민의 반대가 강하다는 점에서 박근혜 의원으로서는 이명박 편을 들어 선뜻 지지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야당과 한나라당 박근혜계가 연합해 세종시 수정안을 부결시켰듯이 다시 한번 둘이 연합해 4대강 사업을 저지하는 것은 결코 비현실적인 상상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2012년 총선과 다음해 대선에서 어떤 방식의 이합집산과 합종연횡이 일어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누가 알겠는가?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박근혜계가 동서화합과 남북의 평화공존, 그리고 복지국가 건설을 내걸고 합치게 될지. 지금으로서는 몽상에 지나지 않지만 진심으로 한국 정치를 염려하는 사람이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에게 대연정을 제안했듯이 한나라당과 민주당과 자유선진당, 그리고 노무현의 후예를 자처하는 국민참여당이 지역주의를 버리고 대승적으로 통합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그렇게 보수 색깔이 분명해져야 진보 역시 자기 정체성을 명확히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거시적 전망을 접는다 하더라도 4대강 사업을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게 한다는 절박한 이유 때문에라도 그 사업에 반대하는 야당은 이제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과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공조하기를 원한다.

*이 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7월호에 실렸습니다. (http://tour.ilemonde.com/)


아래 기사 보고, 서동진 선생 블로그(www.homopop.org)에 가서 퍼옵니다. 여전히 중략이 있지만 그래도 훨씬 이해를 돕는듯...

 

애국주의 논쟁을 되짚어보아야 할 이유들




나라를 사랑한다는 수수께끼

....(중략).......


민족과 국가, 특수와 보편?

애국주의 논쟁도 이 같은 담론적 자장에서 크게 비껴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애국주의 논쟁이 제기한 질문, 어떻게 보편적인 정치공동체를 구성할 것이며 이를 위해 민족, 국가를 둘러싼 열정을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자유주의의 정치적 상상력 안에서만 논의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먼저 진보적 애국주의를 옹호하는 이들의 주장을 가로지는 한 가지 근본적인 전제를 검토해 보고자 한다. 이들은 민족을 특수한 것의 편에 그리고 헌법 혹은 인권이나 시민권을 향유하는 시민의 결사체로서의 국가를 보편적인 것의 편에 놓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에 터해 이들은 민족 혹은 사회적 신체로서의 국가를 향한 열정이나 애착을 인권이나 시민권의 보편성을 지켜내고 확장하기 위한 적극적인 매개로 고려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나아간다. 특수주의로서의 애국주의, 민족주의, 보편주의로서의 공화주의라는 생각은, 이를 비판하는 이들도 크게 문제 삼지 않고 동조하는 듯이 보인다. 이를테면 공화주의적 애국주의를 제안하며 논쟁을 개시한 장은주는 이렇게 말한다. 

less.. “나는 공화주의적 애국주의는 불가피하게 특수주의적일 수밖에 없지만 또한 동시에 보편주의적 지향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서로 모순된다고 보지 않는다. 나라 사랑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집합적인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는 개별 국가 차원의 인민들이 민주공화국을 이루기 위한 자신들의 투쟁과 고난의 기억 그리고 승리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하나의 정치질서이기 이전에 생활방식이자 문화로서의 공화국에 대한 경험 등을 서로 공유하는데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게 이루 민주공화국의 헌법은 <반드시> 보편주의적 지향을 가져야만 한다. 그런 보편주의적 지향이라는 면역제가 없다면, 애국주의는 공화국인 모든 시민의 평등한 자유를 실현하고 보호해 주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내가 태어난 나라’이기 때문에 애국해야 한다는 종족주의적 애국주의로 퇴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강조는 인용자)

인용한 글에서 장은주는 ‘불가피하게 특수주의적인’ 애국주의가 민주공화국, 무엇보다 헌법을 통해 규정되고 선언된 ‘보편주의’와 모순적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애국주의가 특수주의이기는 커녕 이미 보편주의이며, 민주공화국의 헌법이 보편주의적인 것이기는 커녕 항상 특수주의적이라면 어떨까. 따라서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민주공화국에 대한 열정적인 애착을 시민의 주권과 권리라는 보편적인 규범과 결합하고자 하는 기획이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어떨까. 먼저 나는 이런 점에 비추어 진보적 애국주의의 한계를 짚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에티엔 발리바르는 어느 글에서 아주 도발적인 주장을 제기한 적이 있다. 너무나 노골적이고 직접적이어서 거의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 같은 것, 즉 가장 자명한 특수주의라고 할 인종주의를 두고, 그는 그것이 근본적으로 보편주의가 아니겠느냐는 물음을 건넨다. 또 이를 뒤집어 보편주의는 언제나 인종주의를 피할 수 없지 않는가라고 되묻는다. 이는 상식에 따를 때 너무나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그렇지만 이는 겉보기처럼 그리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발리바르는 민족주의와 인종주의의 역사적 형성 그리고 이와 연루된 주요한 주장들을 검토하면서 인종주의/민족주의와 보편주의는 ‘규정적인 대립’의 관계에 있다고 단언한다. 즉 인종주의와 보편주의는 서로를 배제하는 배타적인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하나를 부정하면 다른 하나 역시 사라져버리는 그럼에도 대립적인 관계 속에 있는 항들이란 것이다. 

우리 한국인은, 일본인은, 프랑스인은 이라고 말할 때, 그 때의 한국인과 일본인, 프랑스인은 특정한 종족적 혈통, 문화적 관습과 전통, 언어적 공통성 등 같은 특수한 실체로 환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인종주의가 보편주의적 계기 없이는 등장할 수 없다는 것도 역시 사실이다. 예컨대 민족주의는 친족집단이든, 직업적 배경이나 출신 지역이든 심지어 자신의 성별 같은 일차적 정체성을 ‘비워내고’ 그것을 ‘개인’을 만들어내는 과정으로 전환시킨다. 다시 말해, 민족주의는 ‘개인화된 개인’이라고 부르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 때문에 민족주의에는 보편주의를 실현할 계기를 언제나 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민족, 그리고 언제나 국가가 민족을 통해 구성된다는 점에서 국가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그 공동체는, 개인화된 개인을 만들어내는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라고 부를 수 있다. 국가의 성원으로 등록됨으로써 우리는 또 하나 제거하기가 불가능한 보편주의적 차원이 발생한다는 점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종주의는 절대 보편주의가 아니지만 그리고 보편주의는 절대 인종주의를 통해 자신을 실체화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의 관계를 완전히 벌려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한국인이라고 말할 때 나는 한국인이라는 특수한 민족공동체, 의제적 종족체에 속하는 것으로 말하는 것이지만 그렇게 말하는 나 개인은 이미 사생활과 개인적 양심을 자율화시킴으로써 자연적인 소속이나 일차적인 문화들이라고 할 만한 것에서 떨어져 나온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특수주의적인 것이지만 또한 보편주의적인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연유로, 즉 개인은 국가나 공적 영역이 존재한다는 사실로부터 자신의 직접적인 소속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커다란 틈새를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이 틈새를 가리키는 또 다른 이름이 바로 권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잠재적인 것으로든 실현된 것으로든 권리는 어쨌거나 그것을 지닌 개인을 전제하는 것이고 그 권리를 규정하고 보장하는 법률은 언제나 개인을 전제하는 것이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노동자로든 여성으로든 자신들을 계급으로서 혹은 성별로서 자신을 조직하고 투쟁하고자 할 때, 이는 언제나 개인화된 개인을 전제한다. 

처음부터 자신을 계급으로서 여성으로서 정립하는 주체는 있을 수 없고 만약 그런 것이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온전한 정치적 주체이기는커녕 편집증적인 망상에 사로잡힌 주체일 뿐이다. 물론 이 말은 내가 나의 계급과 성별로의 가입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차별과 착취에 맞서는 투쟁, 즉 정치적인 지평 속에 놓인 주체를 생각해야 한다면 그 정치적 주체란 동일시를 통하지 않고는 발생할 수 없다. 그렇기에 다시 말하자면 차별과 착취에 저항하는 투쟁을 조직하고 갈등적인 주체로 자신을 정립하고자 한다면 근대사회에서는 결국 항상 개인을 전제한다. 또 그러한 만큼 우리는 민족주의가 특수주의라는 섣부른 믿음과 달리 외려 그것은 개인성을 창조하는 강력한 힘으로서 즉 보편주의적 이데올로기로서 작용하였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사회-민족-국가 그리고 정치공동체

다음으로 우리는 애국주의를 제기하는 이들이나 그에 대한 비판적 반성 속에서 반복되는 또 하나의 가정, 즉 애국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성과 국가라는 정치적 공동체를 향한 반성을 분리시키는 것을 짚어보고자 한다. 물론 둘은 나뉠 수 없다. 이 둘이 나뉘어져 버릴 때 우리는 국가라는 정치신학에 대한 비판에서 맴돌고 말기 때문이다. 인민주권이든 아니면 보편적 시민권이든 이에 준거한 정치적 공동체로서의 ‘공화국’이 이미 항상 사회를 민족화하면서 등장하는 한, 공화국은 사회를 관리할 수 있고 지배할 수 있는 대상으로 형성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다시 말해 공화국은 자연적인 삶의 세계인 사회에 뒤이어 혹은 그 위에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민족화함으로써 그리고 그것을 통해 사회를 규제할 수 있는 대상으로 구체화함으로써 오직 등장할 수 있다. 따라서 국가와 사회, 그리고 민족은 동시적으로 발생하고 서로 분리된 채 자율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회의 외부에 놓인 국가를 전제하고 그 국가가 보장하고 실현해야할 권리를 “사회적인 권리”로 확대한다고 해서 그 국가는 보다 민주적이고 보편적인 것이 될 수 없다. 권리의 지속적인 확장을 통해 마침내 사회적 권리까지 보장하고 보호할 수 있게 된 공화국이란 발상은 실은 복지국가가 계급적인 적대를 효과적으로 조정하기 위하여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내게 되었음을 가리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다시 말해 그것은 “민주공화국의 이상을 ‘사회적’이고 ‘인간적’인 차원으로 확대”하는 것을 통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외려 계급적인 적대를 공동체 성원 전체의 집합적 책임이란 형태로 변형시키면서 연대의 체계로서 자본주의적 삶의 세계를 ‘사회화’한 결과 탄생한 것이다. 그렇기에 마셜이 말하는 “사회권” 혹은 “사회적 시민권”이란 실은 구체적인 사회적 삶의 영역까지 확장된 인민주권이 아니라 외려 복지국가가 등장하며 만들어진 사회, 다시 말해 (민족-)사회 국가라는 결합을 통해 형성된 새로운 권리의 체계를 가리키는 것이라 보아야 옳을 것이다.

그러므로 진보적 애국주의자들이 국가에 대한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문제 삼아야 하는 것 역시 이것이지 않을 수 없다. 왜 국가가 그러한 정치적 보편성을 효과적으로 담지하는 정치적 공동체이냐는 것과 더불어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어떤 역사적인 국가인가냐는 것이다. 어떤 역사적인 국가이냐의 문제는 최근 민족-사회-국가의 위기를 감안할 때 그리고 민족과 국가를 분리시키며 민족을 국가로부터 자율화하고 이를 국민이 아닌 일종의 의제적 종족체로 재구성하려는 경향을 떠올릴 때,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할 쟁점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이를 간과하거나 무시한 채 국가에 관하여, 공화국에 관하여 말하는 것은 창백한 정치철학적인 한담에 그치고 말 뿐이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는 사회가 민족화 되고 동시에 국가화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때, 민족-국가를 비로소 역사적인 변천 속에서 파악할 수 있는 열쇠를 얻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어떤 민족 형태가 어떤 국가형태와 만나는가를 통해 민족과 국가를 연결하는 역사적인 연관을 밝힐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인용한 글에서 발리바르가 말하듯이 현재의 지구화 이후에 나타나는 변화, 다시 말해 세 가지 계기 즉 사회-민족-국가라는 계기의 결합의 위기는 특정한 국가 형태의 위기로 현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것이 바로 복지국가의 위기 혹은 민족-사회-국가(national social state)의 위기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민족이 더 이상 국가를 통해 길들여지지 않은 채, 즉 민족이 국가로부터 분리되어 가는 경향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변화된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차별과 배제, 특히 양극화니 하는 경향을 통합된 사회적 삶의 세계로 변환시킬 수 있는 상상적 매개항으로서 민족이 여전히 구실을 하여야 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국가와는 관련이 없는 민족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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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정치신학으로부터 벗어나기

그렇다면 국가를 정치적 보편성의 심급으로 실체화하는 것은 그것이 부르주아 사회 혹은 자본주의적 시민사회의 적대 혹은 구성적 분열로부터 국가가 출현한다는 것을 괄호 쳐 버리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진보세력에게 더 익숙한 것은 주권적 개인의 결사체로서의 국가 혹은 공화주의적 국가가 아니라 계급적인 국가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지배계급의 이해를 도구적으로 대변하는 국가를 재론하자는 것이 아니다. 계급적 국가란 법률적으로든 인격적으로든 자유로운 개인들 사이의 관계를 보편화함으로써 계급 적대를 민족이란 이름을 단 사회적 신체 위에 효과적으로 조직할 수 있는 국가를 가리키는 이름일 뿐이다. 그러므로 국가가 유효한 정치적 공동체로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은 역설적이게도 그것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내부로부터 파괴하는 자본주의적 적대 관계 그 자체이다. 다시 말해 국가로 하여금 자신을 보편적인 정치적 공동체처럼 현상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그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라 할 자본주의적 사회관계 즉 적대와 불평등의 보편성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이한 운명에 처하지 않을 수 없다. 착취와 불평등을 고발하고 거부하기 위하여 우리는 더 많은 권리, 더 좋은 법에 호소하고자 한다. 그러나 국가는 그럴수록 효과적인 정치적 공동체로 구실하지 못한다는 점을 드러낸다. 그래서 국가를 제거한다면? 놀랍게도 그것은 자본주의를 비판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를 제거하는 것이기도 하다. 국가가 없이는 자본주의를 차별과 착취의 체계로 가시화할 수 있는 가능성 역시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자본주의가 초래하는 계급 적대를 비판하고자 할 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국가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착취와 차별에 대항하는 주체는 권리를 지닌 개인을 불러내고 그들이 결집하고 조직하는 실천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결국 자본주의적 보편성과 정치적 공동체로서 국가가 갖는 보편성은 전적으로 서로에게 의존하면서도 또한 근본적으로 모순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유와 평등은 공화국만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말해야 한다. 무엇에 대한 자유와 평등인가. 그것을 묻지 않고 그 투쟁을 개시할 수는 없다. 국가가 정치적 공동체로서 보편성을 담지 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결국 자본주의와의 대결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오직 공화국만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공화국이 더 이상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생성 조건을 망각한 유령과도 같은 국가일 뿐이다. 사회적 국가로서의 공화국이 아니라면 그 국가는 정치의 신학 속에서 가공된 신기루와 같은 공화국일 것이다. 


_[시민과세계]에 기고한 글